‘풋 마이 스니커즈 온(Put my sneakers on)/ 멀리 가보자고’
지난 7월 미국 빌보드 200차트에서 톱 8위에 오른 그룹 있지(ITZY)의 곡 ‘스니커즈’(SNEAKERS)의 가사다. 운동화를 신고 어디든 자유롭게, 거침없이 뛰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곡이다. ‘자유롭게 뛰고 싶다’는 갈망을 노래하는 이 가사는 K팝 대표 프로듀싱팀 ‘별들의전쟁’의 강정훈(37·예명 프라이데이) 프로듀서가 썼다.
그가 김창겸(37·예명 CHANG) 프로듀서와 함께 2009년 결성한 ‘별들의전쟁’은 4세대 걸그룹 있지의 여러 명곡을 탄생시켰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워너비), ‘난 뭔가 달라 달라’(달라 달라)에서 보듯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노래 가사가 특징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이들의 가사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용기와 조언이 됐다.
14년차 프로듀서인 이들은 K팝의 역사를 함께 써왔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음악을 함께 했다. 지금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다. 경북 구미에서 상경한 후 처음에는 홍대 클럽 MB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용감한 형제들’을 만나 함께 일했다. 2016년 회사 ‘갈락티카’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갈락티카 스튜디오에서 강 프로듀서를 만났다. 작업실 소파에는 담요가 놓여져 있었다. 잦은 밤샘 작업의 흔적이었다.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앞서 인터뷰는 대부분 서면으로 진행했다. 강 프로듀서에게 K팝의 전성기를 함께 만들어온 소감을 물었다. 그는 “처음 K팝 음악을 시작할 때는 이렇게까지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장르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운을 뗐다. 지금 그가 만드는 곡은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에게 뻗어간다. 그는 “가끔 우리 음악의 영향력을 실감하면서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회사명인 ‘갈락티카’와 팀명인 ‘별들의전쟁’은 더 밝게 빛나는 별(스타)이 되려는 전쟁 같은 음악시장에서 활약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지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아티스트를 빛나게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예명인 프라이데이에 대해선 “모든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금요일이지 않나.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부연했다.
“우리는 ‘강남 스타일’을 만든 유건형 피네이션 프로듀서, SM엔터테인먼트의 유영진 프로듀서의 음악을 접하면서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우리가 10, 20대 때부터 K팝 역사에 남을 곡을 만든 분들인데 30여년의 시간동안 여전히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어 히트시키는 모습이 정말 놀라워요. 언젠가 유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해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예요.”
동경하던 선배들의 뒤를 이어 두 사람도 2010년대 초반 K팝 부흥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K팝의 토대를 닦은 셈이다. 씨스타19의 ‘마 보이’(Ma Boy), 에이핑크 ‘얼라이트’(ALRIGHT), 몬스타엑스 ‘아름다워’, 워너원 ‘투 비 원’(TO BE ONE) 등이 대표 히트곡이다. 강 프로듀서는 “2011년에 쓴 ‘마 보이’와 2021년 작품인 있지의 ‘로코’(LOCO)가 동시에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들려오면 우리도 K팝이라는 울타리를 키우고 발전시키는데 분명히 기여했다는 생각에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K팝을 듣고 사랑해주는 지금 직업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별들의전쟁’의 작품은 스펙트럼이 넓다. 아이돌 댄스곡 외에도 드라마 OST, 게임 테마송, 광고 음악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많은 장르 중에서도 강 프로듀서가 가장 ‘갈락티카스러운’ 음악으로 꼽은 건 있지의 곡들이었다. 그는 “있지의 곡은 ‘퓨전 그루브’라는 장르로 우리 팀만의 노하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음악”이라며 “R&B, 힙합을 베이스로 다른 장르와 퓨전을 시도했다. 딱 우리의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강 프로듀서는 가사를 쓸 때 많은 의미를 내포하거나 은유적인 표현보단 직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이다. 그래서 가사 전달력이 좋다. 때론 메시지가 너무 뻔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강 프로듀서는 “우리가 있지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걸 의미 없는 메타포와 예쁜 말들로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당당하고 솔직한 화자가 직설적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원했다. 그런 캐릭터가 지금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강 프로듀서는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별들의전쟁’이 탄생시킨 곡들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면서 해답을 찾아가고, 자유에 도달하는 서사를 노래한다. 우주소녀의 ‘버터플라이’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겠다는 포부를 강조한다. 트와이스의 ‘고 하드’(GO HARD)는 ‘파도가 치고 가시를 뿌려도 결국엔 내가 승자’라며 거침없이 세상에 마주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내가 나일 때 진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봤죠.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내가 누군지 잘 모를 때가 훨씬 많아요. 다른 일, 남들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해도 정작 자신에 대한 생각은 잘 안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빨리 찾을수록 남은 인생이 더 즐거울 수 있다고 믿어요. 저 역시 감정을 글로 써보는 시간을 가지곤 해요. 그럴 때 재밌고, 행복해요.”
오랜 시간 다양한 아티스트와 작업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강 프로듀서는 “트렌드가 계속 바뀌어도 최대한 우리만의 색깔을 가지려고 노력했다”며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흐린 색깔의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주일에 5~6일, 하루 10시간 이상 작업실을 지킨다. 1년에 30곡 이상은 쓴다고 했다. 1년에 한 번 휴가를 가기도 쉽지 않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몇 시간이고 책상 앞에서 버틴다. 이렇게 힘든 작업이지만 창작을 이어가게끔 하는 원동력은 확실했다. K팝이 세계적 주류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힘을 낸다고 했다. 강 프로듀서는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K팝 문화 속에 독보적인 색깔을 지닌 우리 음악을 문신처럼 강렬하게 새길 것”이라며 웃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