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이제 보기 어려워진 역사 대하소설을 재미 한인 여성 작가들이 잇달아 써내고 있다. 이민진의 ‘파친코’ 열풍에 이어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출간된 김주혜(35)의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a Little Land)’이 국내에 소개됐다. 이 소설은 전미 40여개 매체에 소개됐고, 10여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소설은 시간적으로는 1917년부터 1964년까지, 공간적으로는 평안도부터 제주까지 아우른다.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열 살에 기생이 된 ‘옥희’를 중심 인물로 세우고, 그와 연관된 경성 기생집 주인과 동료들, 독립운동과 개인적 성공으로 길이 갈리는 식민지 조선 청년들, 일본 군인과 권력자 등을 등장시킨다.
‘파친코’와 마찬가지로 일제시대 한국인들의 이야기지만 가난한 이들의 생존에 대한 강렬한 이야기, 청년들의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서 세계적 공감을 확보했다. 김주혜는 이민진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삶의 핵심을 건드리는 듯한 시적인 문장들을 보여준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이 구절은 작품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김주혜는 1987년 인천에서 태어나 아홉살에 가족과 함께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했다. 프린스턴대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출판사에서 근무하다 퇴사 후 집필에 매달렸다. 6년 만에 완성했다는 이 소설의 그의 데뷔작이다.
김남중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