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라면 소년보다 담대하라”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 마을의 소녀 줄리엣이 힘찬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영화 ‘스칼렛’은 주인공 줄리엣이 어둡고 외로운 현실에서 주체적인 의지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줄리엣은 그의 아버지 라파엘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소녀다. 겉으로 보기에 이 시골 소녀의 삶은 평온하다. 하지만 여태껏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목공인 아버지는 힘겨운 전쟁을 마치고 왔으나 마을에 쉽게 정착하지 못한다. 일거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 줄리엣 역시 학교에선 괴롭힘의 대상이었다. 힘든 현실 때문인지 줄리엣은 마법이 있다고 믿는다.
영화는 마법을 소재로 몽환적 분위기를 더한다. 어느 날 숲속에서 만난 마법사가 줄리엣에게 ‘주홍 돛을 단 배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줄리엣은 그 운명의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다 불시착한 장을 만난다. 줄리엣은 장에게 먼저 키스를 하며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장은 곧 비행기를 고쳐 떠난다. 상심에 잠긴 줄리엣에게 라파엘은 “삶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아. 그렇지만 희망을 품고 살아간단다”라고 위로한다.
줄리엣이 사랑의 상실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라파엘이 죽는다. 아버지를 잃은 그는 슬픔에 잠기지만 장이 돌아온다. 다리를 다친 장을 돌보면서 그는 웃는다. 라파엘의 말대로 삶은 분명히 힘들지만 그 안에 희망이 있었다.
이 영화는 알렉산드르 그린의 러시아 콩트 ‘스칼렛 세일즈’를 원작으로 한다.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이 표현해낸 ‘스칼렛’은 한 폭의 낭만주의 명화를 보는 듯하다. 석양이 드리운 호수 앞에서 책을 읽는 줄리엣은 신비한 매력을 뿜어낸다. 흘러내릴 듯한 스칼렛의 주홍빛 머리칼은 바람에 살랑거린다. 피아노를 치는 그의 뒷모습과 아름다운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이런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줄리엣의 혹독한 현실과 대비된다.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원작 그대로지만 마르첼로 감독이 만들어낸 줄리엣은 좀 다르다. 그는 8일 부산 해운대구 KNN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원작과 달리) 줄리엣의 독립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부분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재탄생한 줄리엣은 강인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인물이다. 왕자에게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왕자를 돕는다. 줄리엣은 비행기가 추락하며 다리를 다친 장을 구하고 치료한다.
줄리엣역의 배우 줄리엣 주앙은 “원작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골 처녀가 멋진 왕자를 만나서 인생을 역전한다는 스토리가 있었는데 촬영을 하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줄리엣은 그런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 “원작과 영화 사이에 균형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마틴 에덴’으로 알려진 마르첼로 감독은 상실과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한 다큐멘터리를 다수 연출해 유럽에서 극찬을 받고 있다. ‘스칼렛’은 그의 두 번째 장편 픽션 영화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칼렛’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작품으로 선정됐다.
부산=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