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자녀교육 성공했던데”라는 말을 들어보면 대개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켰다는 부모 이야기다. 자녀를 잘 키웠다는 평가가 ‘부모 노릇’의 내용이 아니라 자녀를 어디에 입학시켰느냐로 점수가 매겨지는 현실이 아쉽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사회에 ‘황금 티켓 신드롬’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우리 사회의 오래된 현상을 짚어 낸 것 같다. ‘OECD 한국 경제보고서 2022’에 따르면 한국은 명문대 진학, 대기업·공기업 취업 등 낮은 확률의 황금 티켓을 손에 쥐기 위해 개인들이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 있다며 이를 황금 티켓 신드롬이라고 표현했다. OECD는 이런 현상이 한국의 교육, 직업 훈련 전반을 왜곡시키면서 청년층 고용률 하락, 저출산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해법 중 하나로 창업 교육을 포함한 다른 성공 경로를 많이 만들어줘야 정규직과 명문대 선호가 완화돼 황금 티켓에 대한 집착도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OECD가 말한 해법은 옳다. 하지만 누가 황금 티켓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학벌 우선주의, 성공 지상주의 등의 사회 분위기가 사라지면 달라지겠지만 아직 우리 현실은 멀어 보인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비싸게 가르쳐야 한다는 욕심과 적어도 남만큼은 따라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합쳐져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을 빼앗겨 버린 지 오래다. 이런 사회 속에 살다 보니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고, 그 두려움은 가능성을 죽인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생기는 이유는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완벽하게 잘해야 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 8월 서울대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에게 당부한 말 역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승진, 은퇴, 노후 준비와 어느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길 바란다”며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반갑게 맞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전엔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워지는 것들이 있었다. 전통적 대가족은 경제적으론 힘들었지만, 생명력이 있고 삶의 의지가 넘쳤다. 그 속엔 작은 사회질서가 있었고 선의의 경쟁과 갈등, 희생이 있었다. 가족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력하지 않으면 얻기 힘든 것이 돼버렸다. 누군가에게 미소 짓기만 해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고마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치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 노릇’이 먼저 달라지면 사회 분위기도 언젠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지만 부모 역할에 대한 시선을 바꿔보자. 자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녀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사랑이 담긴 시선은 생명을 살린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녀들을 대한다면 삶이 달라질 것이다.
자녀들이 건전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감, 정서적 안정감, 자발적 동기를 갖도록 도와줌으로써 조화롭고 원만한 부모 자녀 관계를 이룰 수 있다. 성장기 자녀를 잘 양육하기 위한 ‘부모 노릇의 4가지 원칙’을 세워보자.
제1원칙은 자녀와의 신뢰감 형성을 위해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자녀 행동을 일일이 추궁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이다. 제2원칙은 자녀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 위해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제3원칙은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자녀의 부당한 요구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보상체계도 일관성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제4원칙은 자발적 동기를 갖게 하려고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심사숙고해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렸다 도와주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와 사춘기 이전에 친밀감을 형성하고 사춘기에는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늘에 연이 뜨기 시작하면 많이 풀어줘야 하듯 자녀의 행동 한계를 자꾸 조여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