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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교회와 별빛버스



20여개 노인·사회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앞에 모였다. 유엔이 정한 ‘세계 노인의 날’을 맞아 이들이 벌인 행사는 ‘제1회 무연고 사망 노인과 자살한 노인들을 위한 추모제’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고령자(65세 이상)의 무연고 사망자 수는 666명에서 1834명으로 3배 정도 늘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를 알 수 없거나,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당한 사망자를 말한다. 지난해 국내 무연고 사망자 수는 3603명으로 이 또한 매년 증가 추세다. 혼자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관계 단절 등이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죽어도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없는 ‘장례 사각지대’는 더 늘 수밖에 없을 게다.

무연고 사망 통계에 대한 불편한 진실도 있다. 매년 집계되는 무연고 사망자의 70% 정도는 사실 연고자가 있다. 하지만 유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면서 무연고 사망자로 등록되고 있는 것이다. 매정한 가족들 아니냐고 욕을 해야 할지, 오죽했으면 절연을 선택했겠느냐고 심정을 헤아려야 할지 알 길은 없다. 현실적 문제는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어떻게 하느냐로 모아진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자체 비용으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를 수 있게끔 공영장례 조례를 마련한 곳은 100곳 정도다. 공영장례 시스템이 갖춰진 이들 지자체의 경우 무연고자의 종교가 확인되면 해당 종교예식으로 장례가 집전된다. 종교 확인이 안될 경우 기독교·천주교·불교·원불교 등 주요 종교단체들이 돌아가면서 장례를 맡는다.

안타까운 건 무연고자를 위한 종교별 장례에서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다는 점이다. 유독 기독교식 장례 담당 목사를 섭외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자의 종교이며, (장례 집전은)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함이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의 신학적 입장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장례 집전을 약속했다가 장례식 전날 취소하는 사례가 왕왕 있는가 하면, 현직 목회자보다는 현실적 부담이 덜한 은퇴 목사가 장례 집전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자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담당하는 비영리단체 관계자의 얘기다.

며칠 전 ‘무연고자 장례예배 손사래치는 기독교 왜’라는 제목의 본보 보도가 나간 뒤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한 기독교 가정사역단체 대표는 “순번대로 기독교 쪽에 배정받은 장례식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있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섬김 사역 차원에서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로 들렸다. 차제에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기독교 추모예식 방법과 절차 등 매뉴얼을 만들어 놓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나왔다. 기독교의 신학적 입장을 십분 수용해 장례예배보다는 추모예식 등으로 얼마든지 신학적 충돌을 피하는 대안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달 전쯤 복지부는 ‘별빛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이 버스는 무연고 사망자 발생 빈도가 높지 않고, 무연고자 장례가 여의치 않은 지자체를 돌면서 장례 지원을 수행할 수 있는 버스다. 조문객 탑승 좌석과 시신을 운구할 수 있는 저온안치공간, 간이 빈소도 차 안에 마련돼 있다. 버스 운행을 시작하면서 복지부가 내놓은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별빛버스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 예식과 조문객 애도의 공간으로 우리 사회의 소외되고 빈곤한 이웃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해 줄 것입니다.’

별빛버스 대신에 ‘교회’라는 말을 바꿔 넣어 읽어봐도 어색함이 전혀 없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손 내미는 일은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멀리 있지도 않다. 사실 별빛버스가 하고자 하는 일이 교회의 역할 아닐까. 무연고자의 마지막 길에 교회가 긍휼한 마음을 품으면 좋겠다.

박재찬 종교부장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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