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 만나교회(김병삼 목사)에 흡연실이 만들어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언젠가 김병삼 목사는 젊은 부부를 심방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느라 예배당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교회에 오면 아내와 아이만 들여보내고 본인은 교회 밖을 서성인다고. 일반적인 목회자라면 금연을 독려하는 수준에서 끝났을 테지만 김 목사는 달랐다. ‘크리스천이라면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교회에 오면 안 되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답은 간단했다. 그는 교회에 흡연실을 만들기로 했다. 만나교회 홈페이지에 적힌 흡연실 소개 문구는 이렇다. “만나교회의 흡연실은 흡연을 권장하는 장소가 아니라 흡연자도 자유롭게 교회에 올 수 있음을 나타내는 장소입니다.”
흡연실을 둘러싼 김 목사의 정확한 생각은 그가 2018년 내놓은 ‘치열한 도전’이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흡연실은 분명 선교적인 공간”이라면서 이렇게 적었다. “흡연실 설치를 두고 어떻게 교회가 대놓고 담배를 피우라고 하느냐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공간의 의미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교회에 올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선언에 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하다면 예배당에 있는 사람들이 흡연실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흡연실을 통해 예배당에 오게 될 것이다.”
김 목사가 한국교회 처방전으로 자주 언급하는 키워드는 ‘선교적 교회’다. 그는 이렇게 당부하곤 한다. 교회의 시선은 항상 교회 바깥으로 향해야 한다고, 한국교회는 ‘세상 속의 교회’가 돼야 한다고.
그의 진단을 허투루 여기기 힘든 것은 한국교회가 갈수록 우리 사회의 게토처럼 변하고 있어서다. 최근 만난 옥성삼 감리교신학대 객원교수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국내 언론의 ‘처치 패싱(Church Passing)’ 현상을 걱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국내 언론은 언젠가부터 교계 이슈나 신학적 논쟁, 교회 선행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옥 교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불신자에게 한국교회의 활동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펼쳐지는 크고 작은 소동일 뿐이다. 실제로 언젠가부터 국내 언론에 ‘교회 기사’가 등장하는 경우는 대략 둘 중 하나일 때가 많다. 목회자의 일탈이 문제가 되거나 교회 세습 문제가 입길에 오르내릴 때다.
옥 교수가 지난 8월 발표한 논문에는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국내 일간지가 개신교 이슈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다룬 국내 연구물들을 종합해 분석한 데이터가 실려 있다. 눈여겨봄 직한 대목은 과거엔 한국교회를 긍정적으로 다룬 기사가 많았다는 거다. 가령 60년대에는 한국교회를 다룬 보도의 86.7%가 긍정적 뉘앙스를 담았다. 70, 80년대에도 그 비율은 78.3%, 62.3%에 달했다. 하지만 90년대가 되면서 그 수치는 50% 아래로, 2000년대엔 한 자릿수로 추락했다. 옥 교수가 6월 내놓은 논문엔 2004~2021년 일간지 4곳의 개신교 관련 사설을 분석한 내용이 담겼는데, 긍정적 사설(7.1%)보다는 부정적 사설(77.6%)이 10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다시 만나교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한다. 많은 교회가 쪼그라드는 교회의 위상을 걱정하며 구심력을 키울 때 이 교회는 담장 밖으로 뻗어 나가려는 원심력을 기르는 일에 집중했다. 가령 2018년 4월부터 만나교회는 토요 예배를 주일 예배와 비슷한 비중으로 드리기로 결정하면서 성도들에게 이렇게 독려했다고 한다. 토요일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일요일엔 선교지나 사역지로 흩어지자고.
물론 만나교회의 철학이 한국교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요술봉이 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교회의 견실한 사역들은 한국교회의 참고서가 될 만하다. 물론 모든 교회에 흡연실이 생길 순 없겠지만 말이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