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주얼 레스토랑부터 파인 다이닝까지 '비건 레스토랑'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비건 식당이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채식과 비건을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심, 풀무원, 신세계푸드 같은 식품기업들까지 비건 레스토랑을 열며 대중성을 넓혀가는 추세다. 30일 한국채식연합 등에 따르면 채식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25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기후위기 대응, 동물복지, 가치소비 등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늘면서 채식인구는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채식인구 증가에 발맞춰 비건 음식점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비건 음식점 수는 350~400개 정도로 알려진다. 인구 규모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식품업계 대기업들이 합류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비건 음식점 이용객 수는 물론이고 비건 음식점도 늘고 있다. KB국민카드의 카드매출 분석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비건 전문 음식 가맹점은 2019년보다 391%, 매출액은 272% 증가했다. 이 가운데 비건 베이커리 전문점 수는 2019년보다 439%, 매출액은 376% 늘었다.
농심에서 지난 5월 서울 송파구에 문을 연 ‘포리스트 키친’은 비건 파인 다이닝이다. 한국의 비건 음식점 구성을 보면 햄버거, 파스타 등을 선보이는 캐주얼 레스토랑이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포리스트 키친’은 프리미엄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농심 관계자는 “최근 20~40대 사이에서 파인 다이닝과 맡김차림(오마카세)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비용이 들더라도 색다른 경험을 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채식으로 가치소비를 실천하면서도 프리미엄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농심은 대체육 제조기술을 활용해 메뉴를 개발할 때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다. 포리스트 키친 오픈에 앞서 미국 뉴욕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김태형 총괄셰프와 손을 잡았다. 비건 음식 분야에서 앞서는 미쉐린 그린스타 셰프인 벨기에의 니콜라스 디클로트와 함께 스페셜 메뉴도 선보였다. 포리스트 키친은 서울시에서 발표한 ‘2022 테이스트오브서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더 베러’도 비건 레스토랑이다. 지난 7월 서울 강남구에 문을 열고, 오는 12월까지 운영하는 ‘더 베러’는 신세계푸드의 대안육 브랜드 ‘베러미트’의 콘셉트 스토어다. 베러미트의 대안육 제품뿐 아니라 식물성 음료, 치즈, 소스, 디저트 등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입소문을 탔다. 신세계푸드에 따르면 더 베러 누적 방문객은 3개월 만에 5000명을 돌파했다. 신세계푸드에서 예상했던 방문객 수보다 배 이상이다. 이 가운데 70%는 비건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더 베러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동물복지, 지구 환경과 인류 건강 등에 관심 있는 모임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매장 대관, 메뉴 할인, 강연 등을 진행하는 ‘베러미팅’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식품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비건 레스토랑을 선보인 곳은 풀무원이다. 풀무원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 ‘플랜튜드’를 열었다. 식물성 지향 식품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오픈 두 달 만에 2만개 메뉴 판매를 기록했다. 플랜튜드는 다양한 메뉴를 1만원대 안팎에서 즐길 수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을 지향한다. 접근성을 낮춰서 더 많은 사람이 식물성 지향 식품을 맛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두부페이퍼 라자냐, 트러플 감태 크림 떡볶이처럼 비건이 아닌 이들도 선뜻 고를 수 있는 친숙한 메뉴들로 구성됐다. 풀무원 관계자는 “오픈 초기에는 ‘비건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코엑스 맛집’으로 소개되고 있다”며 “비건이든 아니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비거니즘을 내세운 전략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