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강덕경의 일생’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전형적인 위안부 서사와 다르다.
먼저, 일본인이 쓴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라는 점이 눈에 띈다. 저자 도이 도시쿠니(69)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과 저술 활동을 병행해온 저널리스트. 그는 1994년 나눔의집에서 처음 만난 강덕경 할머니의 생애를 20년에 걸쳐 추적했다. 1997년 1월 강덕경이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의 생활과 말을 기록하고, 이후엔 그의 생애 전체를 더듬어가며 신뢰할만한 인물 평전을 써냈다.
저자는 2015년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일본에서 공개하면서 이 책을 함께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을 일본인을 향해서 썼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들의 같은 인간으로서의 아픔을, 가해국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글은 보통 위안부 피해에 집중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강덕경의 생애를 온전히 그려내는데 주력한다. 그 생애를 지배한 건 물론 위안부 피해다. 그렇지만 위안부 피해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삶이 있다. 예컨대 위안부 피해자들은 흔히 혼자 살았고 결혼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강덕경은 연애도 했고 동거도 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결혼이나 동거, 출산 등은 털어놓지 못하는 종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은폐 또는 침묵해온 것일 수 있다.
강덕경이 가해자였던 일본 군인에게 가졌던 연애 감정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그녀가 그러한 복잡한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위안부 제도의 가혹함”이며 “강덕경씨의 모순된 감정 문제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왜 위안부 제도가 악인가 하는 고발이 되는 것”이라고 썼다.
책을 번역한 위안부 연구자 윤명숙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자가 가해자와 특정 감정을 갖는 에피소드는 강덕경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위안부 증언집을 읽다보면 종종 부딪치는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들으려 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윤명숙은 이 책에 대해 “한국사회에 알려진, 스테레오 타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상과 다른 강덕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과장도 허식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의 한 개인으로, 피해자를 기억하고 사유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강덕경은 위안부 피해자일뿐만 아니라 정신대 피해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덕경은 그동안 위안부로만 기억돼 왔다. 이 책은 그의 정신대 시절을 고스란히 전하면서 일제하 조선여성이 겪어야 했던 또 하나의 피해를 기억하게 한다.
강덕경은 192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학교를 다니다가 친구와 함께 여자정신대에 입대해 일본 후지코시 공장에서 일했다. 정신대에서 도망갔다가 일본 내 군위안소에 끌려가 5개월 남짓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귀국해 부산에서 지내다 서울로 상경했고 1991년 연말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했다.
강덕경은 나눔의집 할머니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했고, 김순덕과 함께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데 힘썼다. 그는 위안부 문제를 그림으로 알려온 할머니로도 유명하다. 책 표지에 사용된 ‘고향, 진주 남강’이나 ‘빼앗긴 순정’ 같은 강덕경의 그림은 해외에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향년 69세로 ‘끝까지 싸워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야기는 증언집에도 남겨져 있지만 전 생애를 충실히 기록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