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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살리는 음악, 살게 하는 음악



‘음악이 나를 살게 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비유적 표현이지만 현실에 발을 댄 표현이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와 그들의 음악이 뚜렷한 목적 없이 이어지던 십대 시절의 격렬한 방황으로부터 자신을 구했다는 K팝 팬의 고백은 잠깐의 검색만으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질풍노도라는 청소년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몇 해 전 전국 팔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트로트 열풍과 그로 인해 탄생한 신흥 스타들은 팬덤의 중심축을 이루는 중년 팬들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됐다. 어린 시절과는 또 다른, 중년에 찾아온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그들의 존재와 음악으로 극복했다는 증언이 쉼 없이 쏟아졌다. 관련 공연, 모임, 전시 등을 통해 사회에서 멀어지던 중·노년 소외계층을 한데 모으게 만든 새로운 화합의 장을 만들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을 음악이 대신한 셈이다.

음악이 구한 삶은 비단 열광적 팬덤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노래 한 곡을 반복해 들으며 슬픔과 아픔을 달래던 어느 밤, 공연장에서 들은 노래 한 곡에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른 기억 같은 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은 흔하디흔한 경험이다. 음악이 불러온 감정의 파도는 음악가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올여름 코로나로 3년 만에 돌아온 한 록 페스티벌에 싱어송라이터 재패니즈 브렉퍼스트가 섰다. 그는 ‘정미’라는 미들네임을 가진 미국 출신 음악가로, 2014년 암과 사투를 벌이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픈 심정을 담은 데뷔 앨범 ‘사이코폼프(Psychopomp)’로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엄마와의 나날을 솔직하고 절절하게 풀어낸 책 ‘H마트에서 울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 그는, 엄마의 나라인 한국에서 엄마의 이야기가 담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엄마가 떠난 슬픔을 딛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며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감정이 그리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노래를 마친 그는 살짝 밝아진 표정으로 새 노래를 시작했다. 관객들도 다시 출렁였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을 나눴다는데 이 지면을 건다.

음악은 그런 존재다. 누구나 찾아가 그만의 의미가 된다. 그 감정의 시작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나 공연장의 특별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모를, 몸과 마음을 기꺼이 그곳에 맡긴 사람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마법 같은 공기가 있다.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로 수년간 제대로 된 공연을 만날 수 없던 시절, 공연을 돌려 달라는 사람들의 외침은 단지 생계만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다. 생계라는 두 글자가 주는 절박함을 바탕으로 음악과 공연을 사랑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놀라운 순간이 힘없이 사라지지 않기를, 그들이 예고 없이 닥친 위기 속에서도 자생할 수 있는 굳건한 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달라는 기도이자 호소였다.

가벼운 몇 글자로 형언할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도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 가운데 음악가도, 음악을 사랑하는 이도 있다. 그 어떤 책임보다 빠르게 이어진 취소와 연기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그 혼란 속 자생하는 움직임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공연을 주최하는 음악가와 기획자는 회의를 통해 공연 목적과 선곡을 면밀히 검토해 공연의 진행과 중단을 신중하게 결정한다. 공연 중단의 경우 취소에 따른 불편을 겪을 관객에 대한 사과와 희생자에 대한 진심 어린 애도의 말을 전한다.

공연을 진행할 경우 진행 배경과 관련 변동 사항을 관객에게 전한다. 어렵사리 같은 공간에 모인 이들은 기도로, 묵념으로, 무엇보다 음악으로 애도와 슬픔을 나눈다. 다름 아닌 바로 지금, 우리를 살리고 또 살게 해준 음악의 힘을 본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직한 성숙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본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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