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축제 참사로 인한 희생자를 애도하는 국가 애도기간이 지난 토요일 끝났다. 참사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교계에서 가장 먼저 추모하러 갔다. 교계 연합기관도 있고 현직 교단장들이 있어서 좀 늦게 갈까도 생각했지만, 내 마음이 그걸 허락지 않았다. 맨 먼저 가서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두 손으로 국화꽃을 가지런히 들고 가서 헌화하고 애도의 묵념을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마치 내 아들과 딸을 잃은 아픔처럼 너무나 가슴이 침통하고 먹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문록에 “꽃잎은 져도 향기는 지지 않길 기도합니다”라는 한 줄의 글을 남겼다.
그런데 조문을 다녀온 후, 페이스북에 이런 심경을 올렸더니 아주 집요하게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떻게 바알 축제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 귀신을 불러오는 핼러윈 축제 같은 곳에 가서 죽은 사람을 애도하러 가느냐”고 말이다. 아니, 몇 사람은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는 것이다. “목사님이 조용히 다녀오면 되지, 뭘 이렇게 페북에 글을 올릴 필요가 있습니까. 오히려 바알축제를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닌가요.”
나는 전화로 이렇게 설명했다. “전화 주는 의미도 알겠고, 또 그렇게 공격하는 부분도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존귀합니다. 저 가을 들판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억새도, 산기슭에 피어나는 구절초도, 아니, 사람이 볼 수 없는 어두운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귀뚜라미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는 모두 다 존귀한 생명인 걸요. 하물며 칼뱅의 말대로 그분들에겐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 있는 생명이었으니 얼마나 더 존귀했겠습니까. 저는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지 못해서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정도는 수긍을 하는 것 같았다.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그러기 때문에 인종이나 국적,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든지 생명이 희생당했을 때는 우선 애도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망자에 대한 예의이다.
물론 우리가 짚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매뉴얼도 만들어야 하고 법령도 제정하여 만전을 기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해외에서 유입된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보다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나 K팝과 같이 한국적 문화축제를 양성화하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
사실 젊은이들이 마음의 공허와 고독을 넘어서 함께 모여 축제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핼러윈 축제에 대한 근본적인 정신과 유래에 대해서도 영적 안목으로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교회 담장 안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카르텔적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고 문화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정신과 가르침, 교훈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문화화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폐쇄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반기독교적인 문화축제나 불건전한 이방문화에 대해서는 청소년 교육과 계몽을 통해 그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애당초 처음에 막든지, 아니면 기독교문화가 더 확장하고 융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단 둑이 무너져 버리면 걷잡을 수 없이 되는 것처럼, 문화에 대한 초기 대응을 잘해야 하고 문화 사역에도 집중해야 한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 이방 신화부터 제거하고 절대로 그쪽으로 눈을 돌리지 말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하지 못해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축제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었지 않은가. 심각하게 반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면 한국교회는 차라리 긍정적인 전통문화 축제를 하는 데 후원을 해 주고, 미국처럼 성탄절이나 추수감사절 문화 축제를 확장해 가야 한다.
국가 애도기간은 끝났지만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애도해야 하고, 유족을 위로해야 한다. 또한 양극단에 서서 초갈등 분위기를 부추기지 말고 화해 사회를 이뤄야 한다. 그러면서 교회가 건전한 문화를 확장하고 기독교문화도 융성하도록 앞장서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참사가 결코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