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한 청년으로서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유가족분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이 힘들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그저 청춘을 즐기고 싶었던, 어리고 여린 영혼들이여, 부디 평안히 잠드소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음 생앤 안전한 그곳에서 태어나 자유로운 세상을 만끽하며 살아가기를.”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을 찾았을 때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어 있던 추모글이다.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빼곡하게 붙어 있는 메모장, 하얀 국화, 그리고 청년들이 좋아했을 커피와 과자, 컵라면 등이 15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참사를 애도하는 이들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수많은 추모글의 공통점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였다. “젊디 젊은 영혼들이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이 늙은 내가 먼저 갔어야 되는데 이 세상을 지키고 바꿀 너희들을 먼저 보내 미안하구나 미안하구나.”
특히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태원 참사까지 겪었을 한 젊음의 외침에 가슴이 아렸다. “또다시 마음이 괴롭습니다. 저는 왜 또래 친구들을 이리 허망하게 그것도 두 번씩이나 떠나보내야 하나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하나요. 다음엔 저보다 어린 친구들의 죽음을 또 지켜보아야 하나요. 수치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 원통합니다.”
희생자들과 직접 관계가 없고 사고 책임도 없는 시민들은 오히려 미안하다며 머리를 숙이는데 정작 책임이 있는 당국자들은 저마다 핑계를 대고 제도 탓, 남 탓을 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서울 한복판을 걷다가 압사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발생하게 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하는 것, 나아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유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이번 참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고달픈 삶을 돌아보게 한다. 취업도 어렵고 연애나 결혼은 포기하고, 친구들 만나는 것도 3년간 계속된 코로나로 쉽지 않았던 세대다. “아들아, 딸아. 너무나 미안하구나. 세월호 때문에 수학여행, 소풍 한 번 마음 편히 못 가고. 코로나 때문에 체육대회, 운동회마저 못했을 텐데. 모두 사랑해.”
해밀톤호텔 옆 골목 참사 현장을 바라보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추모하는 외국인 부부, 7개국 언어로 쓰여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라는 현수막은 이번 참사에 전 세계인들이 함께 애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슬픔을 함께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연대감과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한없이 미안하고 또 한없이 미안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건 살아있는 자의 몫이며 의무입니다.”
세계적 석학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연대의식 없이는 (좋은) 삶을 살아가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강한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면 시민들이 사회 전체를 염려하고 공동선에 헌신하는 태도를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춘이 갈 곳을 잃은 시대,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젊은이들이 힘든 시기에 위로를 받고 청춘을 만끽하려는 발걸음을 교회로 향하게 할 수는 없을까. 과거 청소년기에 교회 문턱을 밟아보지 않은 이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교회는 사회보다 앞선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류영모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은 “(한국교회가) 젊은이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좋은 문화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는 원인을 분석하고, 교회가 다음세대를 품기 위해 젊은이들이 말씀 안에서 자유롭게 청춘을 만끽할 수 있는 대안 문화를 만들고 그들을 환대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김재중 종교국 부국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