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처럼 걷고 두 팔로 일을 하는 로봇을 우리는 ‘인간형 로봇’이라고 부른다. 영화나 만화를 보면 이런 로봇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본래 모두 할 수 있어 귀찮은 집안일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현실 속 인간형 로봇은 영화나 만화와는 전혀 다르다. 걷거나 달릴 수는 있지만, 막상 일을 시켜보면 굼뜨고 행동도 느린데다 미리 프로그램해 주지 않은 일은 거의 할 수 없어 ‘쓸모없다’는 평가를 받고는 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형 로봇도 현실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인간형 로봇 ‘재난대응’ 분야 가장 주목
로봇은 원래 ‘일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 체코 사람들이 쓰는 말 ‘체코어’에 있는 ‘로보타’라는 단어가 ‘사람 대신 일을 하는 기계장치’라는 뜻으로 바뀐 것이다.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로봇의 기준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구동축, 즉 관절이 두 개 이상 있어야 하며, 두 번째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만든 로봇은 생김새나 하는 일에 따라 공장에서 일하는 제조업용 로봇,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 일을 돕는 서비스용으로 구분한다. 인간형 로봇은 서비스용 로봇에 가깝다. 공장에서 일을 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 대신 여러 가지 일을 해주는 로봇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 인간형 로봇 실용화에 대한 긍정적인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지만 특정 분야에선 인간형 로봇의 실용화 가능성을 긍정 평가하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 중에서도 ‘로봇구조대원’이 가장 대표적이다. 계기가 된 건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당시 누군가 원전 내부에 들어가 냉각수 밸브 등을 잠그고 나올 수 있었다면 2차 폭발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방사능으로 가득한 사고 현장에 들어갈 수 있는 인간은 없었고, 결국 사고로 이어졌다. 이 사고를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은 재난 현장에 인간 대신 투입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개발하자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런 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미국 국방성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15년 개최한 ‘다파 로보틱스 챌린지(DRC)’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났을 때 원자로가 폭발하지 않도록 인간형 로봇이 들어가 복구 작업을 마친 후 탈출할 수 있는지를 겨룬 대회였는데, 한국 내에선 재난로봇경진대회라고 불렸다. 1위를 하면 받을 수 있는 상금은 무려 200만 달러(약 26억6400만원). 화성에 로봇을 보낸 적이 있는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 F35 전투기를 개발한 적이 있는 록히드 마틴 등 세계적 연구기관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 카이스트(KAIST) 연구진이 인간형 로봇 ‘휴보’를 개조해 만든 ‘DRC 휴보’를 가지고 1위를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우주탐사 등 다양한 분야서 활약 기대
비록 대회를 위해 준비한 가상의 원전사고 현장이었지만 로봇이 스스로 자동차를 몰고 들어가고, 전동공구를 들어 벽에 구멍을 뚫고, 냉각수 밸브를 잠그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등 8가지나 되는 복잡한 과제를 모두 수행했다. 이로써 이제는 인간형 로봇이 재난 현장에서 인간 대신 복구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재난 현장이란 사람이 살고 있는 건축물의 붕괴, 화재 발생, 방사능 오염 등이 일어난 곳이다. 이런 곳에서 활약하려면 사람처럼 생긴 인간형 로봇이 가장 적합해 크게 주목받게 된 것이다.
언젠가 과학이 더 발전한다면 인간형 로봇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사람 대신 요리나 청소, 설거지, 심부름을 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형 로봇은 가격이 싼 것도 몇억 원을 호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이 활용하기보다 특수 상황에서 인간 대신 활약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다.
DRC 휴보 이후 인간형 로봇의 개발 방향은 ‘기계장치로 사람의 움직임을 구현해보자’는 기초과학적 연구 단계에서 벗어나 ‘재난 등 특수 분야에 실제로 적용해보자’는 방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적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개발한 일본 혼다 연구진도 최근엔 아시모 연구를 중단하고 재난구조용 휴머노이드 로봇 ‘E2-DR’을 개발하고 있다.
인간형 로봇이 각광받는 또 다른 분야는 우주탐사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로봇을 먼저 보내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 과학자들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인간 대신 우주선 조종 작업을 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 ‘스카이봇(Skybot) F-850’을 개발한 바 있다. 이 로봇은 정말로 ISS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NASA도 ‘로보너트’라는 이름의 인간형 로봇을 ISS로 올려보내 여러 가지 일을 시키고 있다.
앞으로 인간형 로봇이 점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은 자명하다. 구조우주비행사나 심해잠수부, 폭발물 처리, 부상자 구조 등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많은 일들을 대신 해주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인공지능 만나며 한층 성능 높아져
최근 인간형 로봇 실용화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 높일 수 있을 만한 이벤트가 열렸다. 세계적 기술기업 테슬라는 지난 9월 30일 인공지능(AI) 기반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다. 다른 로봇 연구진이 재난, 구조, 우주 등 척박한 환경에 활약하는 로봇에 집중할 때 테슬라는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에 초점을 맞췄다.
차세대 AI 신경망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심층신경망(DNN)은 복잡한 문제 해결에 특화됐다. 장애물, 보행자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DNN 기반 AI가 적용해 다양한 업무가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그래픽 처리장치(GPU) 1만4000개가 탑재된 슈퍼컴퓨터 ‘도조(Dojo)’를 동원, 하루에 14억개의 정보를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매일 50만개의 이동 관련 영상 데이터를 학습 중이라고 하니 성능은 앞으로 점점 더 높아져 갈 것이다.
인간형 로봇의 실용화는 필연이다. 우리 주위 환경은 모두 사람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두 다리로 걸으면서 두 팔로 일하는 방식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아직은 기술이 부족하지만 우리는 기어이 똑똑하고 쓸모 있는 인간형 로봇을 만들고 말 것으로 보인다. 그때가 되면 우리 인간의 삶이 얼마나 더 편리해질지 자못 궁금해진다.
과학저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