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리 가오리 가오리여!”
지난 16일 오후 가파도. 현무암 해변에 사람들이 빙 둘러서 인디언들이 춤추듯 좌로 우로 돌며 바다 생물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중견 작가 홍이현숙(64)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 희생된 바다 생물을 위로하고 인간과 함께 공생하기를 소망하며 펼치는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들이다.
국토의 남단 제주도 가파도가 전위적인 현대미술로 물들고 있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지난 15일 개막식을 갖고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미술관옆집 제주 등 6곳에서 16개국 55명(팀)이 참여한 가운데 일정에 돌입했다. 박남희 감독이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마련한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장소는 가파도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장소로 대중적 관심을 받은 이곳은 순수미술까지 가세해 섬의 매력이 드높아지고 있다.
선착장에 도착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폐가는 이탈리아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26)가 그린 벽화 장소로 변했다. 작가는 다빈치가 그린 프레스코화 걸작 ‘최후의 만찬’의 후예답게 고대의 프레스코 회화의 기법을 적용해 일제강점기 지어진 폐가의 방 곳곳에 생태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남겼다. 현대카드가 후원한 레지던시(무료 혹은 저가로 제공되는 작업실) ‘가파도 에어(Air)’에는 심승욱(50) 작가의 설치 작품이 놓였다. 불에 타 뒤틀어진 고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플라스틱 비닐 수지를 가공한 것이다.
제주(탐라국)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삼성혈’에도 작품이 놓였다. 숲속과 숭보당 등 실내외에서 영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신예선(49) 작가가 경내의 수령 600년이 넘는 녹나무 숲을 명주실로 둘러친 설치 미술 ‘고치를 짓다’는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생하는 태도를 제안하는 듯하다. MZ세대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유적에 현대미술이 입혀짐으로써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현대미술관 옆 제주 전통 가옥을 개조한 레지던시 ‘미술관옆집 제주’에는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61)이 참여형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경험과 참여를 중시하는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관객이 이 공간에서 함께 머물며 음식과 차를 나누며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를 주제로 대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당 한 켠 음식 쓰레기를 발효시켜 퇴비를 만드는 큰 통을 둬 환경을 지키려는 실천적 의지를 드러냈다. 근처 야외에는 김기대(43) 작가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숭배와 지배라는 이중적 태도를 시각화하기 위해 비닐하우스용 스틸로 중세 바실리카 성당의 골조를 만들고 미로처럼 이어진 내부 밭에는 파, 귤, 허브 등을 심었다.
2017년 가을 1회로 출발한 제주 비엔날레는 2회를 파행 끝에 사실상 건너뛰고 5년 만에 이번에 3회 행사를 열게 됐다. 박 감독이 내세운 주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은 인류세·자본세 등 새로운 지질학적 개념이 제기되는 기후 위기 시대에 전 지구적 공생을 향한 예술적 실천을 찾자는 취지다. 박 감독은 “‘움직이는 달’은 자연의 변화를, ‘다가서는 땅’은 자연에서 호흡하는 객체들의 상호 작용을 함축한다”고 밝혔다.
전시 주제는 즉 자연 환경 파괴의 책임이 인류에 있는가(인류세), 보편적 인류가 아닌 자본가에 있는가(자본세) 등 기후 위기를 둘러싼 지질학 담론에서 출발한다. 가파도, 삼성혈, 미술관옆집 제주 등 야외에서 선보이는 설치 작품과 영상, 퍼포먼스 등은 이런 주제를 어렵지 않게 보여주며 관객의 공감을 유도한다.
문제는 양대 메인 전시 장소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구성이다. 개최지가 제주라는 특수성에 갇힘으로써 전시 주제가 기후 위기라는 한 방향으로 가지 못했다. 제주의 역사와 신화 등이 뒤섞이고, 이에 따라 메시지도 탈식민주의, 로컬주의 등으로 다기해지면서 전시장디스플레이가 산만해졌다.
제주도립미술관의 경우 숨으로 잉크를 불어서 나비를 그리는 최선(49) 작가의 ‘나비’ 작품과 지역 출신 강요배(70) 작가가 제주의 자연을 특유의 기법으로 그린 폭포 그림, 공주 출신 임동식(77) 작가의 ‘화석 캐기’ 회화 등이 함께 걸렸지만 왜 이들 작품이 같은 공간에 어깨를 나란히, 혹은 이웃해, 혹은 등을 돌리고 걸렸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제주를 끌어들이더라도 인류세, 자본세라는 큰 틀에서 작가와 작품을 골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찬가지로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 페미니즘 작가 윤석남(83)의 작품은 제주 출신 자선사업가 김만덕을 기리는 작품이다. 제주 풍경화가 곳곳에서 나온 것도 큰 주제에서 동떨어져 있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비엔날레들이 ‘경계를 넘어서’ 등 이것저것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비빔밥’ 주제를 내세우는 경향이 짙다. 이번 제주비엔날레 역시 그런 우리나라 비엔날레의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내년 2월 12일까지.
제주=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