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정치권이 초당적 지원에 나섰던 반도체특별법이 용두사미에 그칠 위기에 처했다. 여야는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를 열어 2개의 반도체특별법 중 하나인 첨단산업특별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반도체학과의 수도권 대학 증원이 담긴 무소속 양향자 의원 발의안과 증원 내용이 없는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을 병합 심사한 결과 김 의원 안이 받아들여졌다. 김 의원이 지방 대학 소외를 주장하고 정부가 수도권정비계획법을 들어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통해 증원하면 된다고 주장하며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교육부 국토교통부 등은 현재도 정원을 못 채운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를 질책하며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수도권 규제를 풀라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 지시가 무색해진 셈이다. 광역교통망 확충, 신도시 건설 등 수도권 정책을 쏟아붓는 정부가 유독 대학 정원 확대에만 수도권규제법을 들이대는 건 모순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 출신인 양 의원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위 위원장으로 영입한 건 ‘초당적 정치 쇼’였을 뿐이었는지 묻고 싶다.
정부의 이율 배반은 또 다른 반도체특별법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논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양 의원이 낸 개정안은 반도체 시설 등의 투자금액에 대해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게 골자다. 김 의원 안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공제율이 이보다 10% 포인트 낮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법인세 세수가 2조6970억원 감소하는 점을 들어 대기업 공제율을 6%에서 8%까지만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반도체 경쟁국인 미국과 대만이 25%의 세액공제를 해주는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발의한 것과 대조된다. 더욱이 ‘칩4 동맹’을 이끄는 미국에 끌려가는 상황에서 파격 지원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의 세수 감소 우려는 이해하기 어렵다. 기재부는 최근 법인세율 인하안이 야당 반대에 부닥치자 여론전을 위해 내놓은 ‘법인세 과세체계 개편 필요성’ 자료에 “감세 규모가 통상적인 국세 증가 규모 내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법인세 혜택을 놓고 기재부가 이렇게 온도차를 느낄 수 있는 건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11월 수출은 전년 대비 14% 줄어 8개월째 감소 기록을 세웠다. 우리 경제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 감소 폭은 29.9%로 주요 11개 품목 중 최고치다. 반도체 위기요, 한국 경제의 위기다. 더 큰 위기는 자신들 논리에 파묻힌 정치권과 정부의 위기 불감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