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없는 새벽의 강가. 인개가 피어올라 숲의 흔적을 가리는 바람에 사람처럼 서 있는 맨 앞의 나무만 모습을 드러낼 뿐 사방 풍경은 형체가 모호하다. 그 모호함의 발원지처럼 가로로 누운 강이 화면을 가르며 이 세계와 저 세계를 경계 짓는 이 ‘안개 낀 숲’ 그림은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을 홀렸다. 한국 최고 컬렉터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돼 국가에 기증됐고, 역시 동양미술을 애호하는 미국 컬렉터의 수중에 들어간 뒤 컬렉션을 소개하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먹의 꿈’ 전(2021)에도 나왔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하는 이기봉(65) 작가 개인전에 가면 국내외 컬렉터들을 사로잡은 매혹의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작품을 가까이 가서보면 아주 얇은 천이 캔버스 위에 1㎝ 정도 높이에 떠 있다. 표면의 막에도, 내부의 캔버스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드러난 이미지와 숨겨진 이미지가 두 개의 층위를 이루며 스며들듯 상호 삼투하는 것이 풍경의 모호함을 배가시키는 비결이었던 것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모호함은 이 세계의 본성이다. 맑은 것이 되레 이상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안개 낀 숲은 도달할 수 없는 저곳을 찾아가야 하는 현실의 벽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홀로 내던져진 이 세계에서의 절대 고독을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홀린다. 그 몽환성은 중국 원나라 말기의 4대 문인화가로, 물가 풍경을 즐겨 그렸던 예찬이나 오진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동양화(한국화)를 전공했을 거라 지레 짐작했지만 의외로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어쩌다 이렇게 동양화적인 작업을 하게 됐을까.
“작업실이 곤지암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안개가 자욱합니다. 어느 날, 미술로 저렇게 아름다운 걸 담지 않고 뭐하고 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개가 낀 숲이 주는 깊이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캔버스에 레이어(층)를 하나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지요.”
이 실험작의 가치가 발견된 건 큐레이터의 안목 덕이었다. 전속으로 있던 국제갤러리 큐레이터가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구석에 처박아둔 이 실험작에 흥미를 보이며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에 들고 갔다. 2007년 무렵이다. 작품은 대박이 났다. 동양적이고 몽환적인 회화에 서구인들은 매료됐다. 처음에는 두껍고 딱딱한 플렉시글래스(아크릴판)를 막으로 썼다. 더 적절한 재료를 찾았고 14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이처럼 얇은 천으로 된 막을 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안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미술적 장치인 막에 대해 “우리 눈을 가리는, 뚫고 나갈 수 없는 막”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표현한 안개 낀 숲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을 상기시키는 집도 없다. 오직 나무만 있다. 작가에게 “나무가 작가의 분신이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제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actor)은 나무가 아니다. 제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공간의 심도다. 1㎝의 폭에서 억만 겁의 깊이가 느껴지기를 바란다. 그걸 통해 거꾸로 세상에 홀로 던져진 심리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1㎝ 붕 뜬 막을 쓰는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안개가 자욱한 걸 표현하기 위해 붓을 안 대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했다. 붓을 전혀 안 쓸 수는 없지만 붓이 주가 되지 않는 작업을 하고자 했다. 그런 자신의 작업에는 회화가 아니라 제조의 개념이 있다고 했다.
국제갤러리에서 14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서 놀라게 되는 것은 작업 물량이다. 최근 2년 간 제작한 신작으로만 꾸렸는데 서울점의 1·2관뿐 아니라 부산점까지 채웠다. 작가는 지난 17일 개막식 이후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는 “제 살을 내 준 전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술이 힘을 못쓴다”고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더 놀라게 되는 것은 안개 낀 숲 회화 연작의 다양한 변주다. 그의 발명품인 얇은 막은 캔버스 위에 1㎝ 붕 떠 있기도 하지만 캔버스에 딱 붙어 있기도 하다. 정면에서 바라본 숲을 그리기도 하지만, 수면에 비치는 물을 드론의 시각으로 포착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화면은 추상화된다. 또 빛이 반사된 수면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에 레진을 뿌려 요철을 만들기도 하고 빗방울이 만들어내는 수면의 동그라미를 표현하기 위해 실리콘 오브제를 천 뒤에서 밀어 올리기도 한다. 단기간의 작업세계의 변주가 이렇게 풍부하다.
그는 1977년에 서울대 미대에 입학했으니 민중미술 작가들의 후배세대다. 당시 박서보, 정창섭 등 단색화(한국적 추상화) 작가들이 미술대학 교수진을 장악했고, 거기에 반발해 구상미술인 민중미술이 등장했다. 이기봉은 단색화도, 민중미술도 아닌 자신의 길을 걸었다. 구상이냐 추상이냐를 떠나 자신의 몸이 개입되는 미술을 하고자 했다. 나무를 표현할 때는 붓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물감을 펴 바르기도 하고 스프레이로 뿌리는 등 ‘몸으로 때우는 작업’을 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감각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로 미술계에 자신을 인식시켰다. 그는 “단색화와 민중미술, 양쪽 주류의 어느 쪽도 타지 않고 사잇길인 감각의 길을 걸었다. 감각의 세계는 끊임없이 재탄생된다. 덕분에 제 작업은 지속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민중미술은 사회운동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이후에는 지속이 힘들다. 지금의 민중미술은 좀비”라고 했다. 이기봉 작가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독일 ZKM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12월 31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