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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경제 우선주의와 국제정치



세계화의 퇴조 속에서 국가들이 자국 경제 우선주의에 몰두하고 있다. 독일, 호주, 사우디 세 나라는 미국의 동맹이고 우방국이다. 이 세 나라가 마치 공동보조라도 취하듯 최근에 연이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이례적인 외교 행보를 하고 있다. 세 나라는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과도 유사하다. 호주와 독일은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이 야기하는 위기를 직간접적으로 심각하게 체험했다. 호주는 직접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에 시달렸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비록 간접적이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의 관리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요컨대 두 국가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의존이 초래할 도전에 대해 경계하고 있고 중국이 민주주의적 가치를 공유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특히 호주는 미국 주도의 반중 봉쇄망이라고 일컬어지는 5(five eyes)-4(쿼드 Quad)-3(오커스 AUKUS)-2(양자동맹) 구조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그런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요 7개국(G7)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이고 독일 총리로서는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숄츠 총리는 바스프(BASF), 폴크스바겐, 지멘스 등 중국을 주요 시장으로 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회사의 기업인 12명을 동행함으로써 이번 방중이 전적으로 경제에 방점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중국은 숄츠 총리의 방문에 170억 달러에 달하는 에어버스 여객기 140대와 독일 백신 구입이라는 선물로 화답했다. 호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주석과 6년 만에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은 경제보복 조치로 중단했던 호주산 밀 수입을 올해 재개해서 이미 18년 만에 최대량을 수입했다. 시진핑 주석의 전격적인 사우디 방문을 통한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도 석유 수입과 일대일로 협력이라는 경제협력이 주요 의제였다. 사우디의 경우는 독일, 호주와는 달리 미국과의 관계에 균열이 있었고 중국과는 권위주의 체제라는 공통분모가 관계 개선에 작용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사우디 외무장관은 ‘일부다처제’의 무슬림 결혼에 빗대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미국과의 ‘이혼’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세 나라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고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회복하면서도 경제의존을 경계하여 경제협력의 다변화도 병행하고 있다. 미국과의 전통적 외교 안보 협력 관계도 훼손시킬 의사는 없다. 세 나라의 복잡한 셈법 배경에는 경제난과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세계 경제의 퇴조 등 다중의 위기가 중첩되면서 세 나라를 비롯한 다수 국가가 경제난에 직면해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경제 우선주의의 외교 행보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미·중 양 강대국이 각기 세력권을 확장하려는 치열한 경쟁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국 이기주의가 역설적으로 각자도생의 실리외교가 활성화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한국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기민하게 국제정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올해는 한국이 주도하여 설립한 유일한 소다자 협의체인 믹타(MIKTA)가 10주년이다. 믹타는 한국이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외교 공간을 확장하려는 의지를 갖고 주도적으로 창설하여 10년을 유지해온 흔치 않은 중요한 한국의 외교 자산이다. 10년 전 초심을 복기하면서 한국이 네트워크가 강한 중견 선진국의 국제 위상을 확보할 수 있는 치밀한 외교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이동률(동덕여대 교수·중어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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