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용병인 인공지능(AI) 로봇이란 소재를 한국적으로 풀어낸 SF영화가 20일 넷플릭스로 찾아온다. 지난해 5월 별세한 강수연 배우의 유작이자 연상호 감독의 새로운 영화 ‘정이’다.

공개를 앞두고 1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연상호 감독은 “예전에 봤던 공상과학(SF) 단편소설을 영상으로 만든다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 ‘부산행’과 ‘반도’,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등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 그가 이번에도 ‘정이’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

‘정이’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급격한 기후 변화로 지구가 폐허로 변하자 인류가 우주의 ‘쉘터’로 이주했다는 설정이다. 쉘터에서 내전이 발생하자 군수 AI 개발회사 크로노이드는 전설적인 용병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고 시도한다. 과연 정이는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연 감독이 막연히 써 내려가던 ‘정이’의 이야기는 배우 강수연으로 인해 영화화됐다. 연 감독은 “꼭 영화화를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강수연 선배가 연기할 윤서현을 생각하면서 영화화를 논의하게 됐다”며 “강수연 선배가 이 영화를 기획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강수연이 맡은 서현이란 인물은 정이의 뇌 복제와 전투력 테스트를 책임지는 크로노이드 연구소 팀장이다. 그는 정이의 딸이다. 서현이란 캐릭터 덕분에 ‘정이’는 한국적 정서를 담은 SF영화로서 완성됐다. 정이는 과거 가족을 위해 전쟁터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서현은 그런 어머니에게 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어머니를 로봇으로 구현해 영광스러운 영웅으로 남게 하는 게 그의 계획이다. 연 감독은 “부모의 인생을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면서 “그게 한국적인 부분”이라고 소개했다.

배우 김현주와는 지난해 ‘지옥’에 이어 또 한 번 합을 맞췄다. 연 감독은 “정이 역할은 인간의 연기와 많이 다르다. 작동하다가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감정을 쏟아내야 할 때도 있다”면서 “그런 것에 능숙한 배우가 김현주 배우였다”고 말했다.

정이를 연기한 김현주는 강렬한 액션을 선보인다. 김현주는 강인한 정이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운동애 매진했다. 액션에 관해 연 감독은 “처절하고 둔탁한 액션을 담길 바랐다”며 “로봇끼리 벌이는 싸움이지만 홍콩영화 ‘견자단’과 같은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원했다”고 부연했다. 김현주는 “AI 연기는 부자연스러운데 자연스러워 보여야 했다. 과거에 해본 적이 없는 연기여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정이는 전투 기능 외에도 과거 기억까지 복제된 AI로 탄생한다. 이 부분에서 연 감독은 존재론적인 질문도 던진다. 그는 영화를 보는 시청자들이 ‘인간성이라는 게 과연 인간만의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