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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양극화와 음모론이 만나면



미국은 트럼프 정권 4년 만에
음모론 세력이 의사당 침탈
보우소나루 황당한 음모론도
8년 만에 민주주의 망가뜨려

미국과 브라질 못지않게
양극화 심각한 한국 정치도
음모론 활개 칠 수 있는 토양
양극화 갈등 서둘러 해소해야

①51.9% 대 48.1%.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는 이렇게 근소한 표차로 결정됐다. 역대 최다 유권자가 참여한 국민투표에서 나라가 둘로 나뉘었다. 탈퇴파와 잔류파로 갈라진 정치인은 정반대 목소리로 국민을 두 진영에 갈라 세웠다. 같은 내각의 장관들조차 각자 택한 진영에서 다른 얘기를 했다. 투표 캠페인 중 한 의원이 괴한의 테러에 숨질 만큼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②49.5% 대 49.2%. 2020년 미국 대선은 개표를 시작하고 나흘이 지나도록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경합주(州) 4곳의 투표함을 모두 열고서야 당선자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인 조지아에서 바이든은 저렇게 미세한 차이로 트럼프를 꺾었다. 바이든의 전국 득표는 역대 최다였고, 트럼프도 4년 전보다 훨씬 많은 표를 얻었다. 그만큼 양 진영이 결집해 사생결단했음을 뜻한다.

민주주의 원산지 영국과 미국은 이렇게 나란히 극단적인 정치 양극화에 맞닥뜨렸다. 여러 모로 닮은꼴이지만, 두 나라의 양극화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투표 이후 영국은 혼란에 빠졌는데, 미국에선 폭동이 벌어졌다. 바이든 당선을 공식화하던 날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했다. 브렉시트 이행에 허둥댄 영국의 혼란은 투표 결과를 따르느라 벌어졌고, 미국의 폭동은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이들이 벌였다.

민주적 절차에 대한 승복과 불복. 이 엄청난 차이는 음모론이 만들어냈다. 인터넷의 각종 음모론을 집대성한 극우 집단 큐어넌(QAnon)은 “비밀조직 딥 스테이트가 미국을 전복하려 한다”면서 선거조작 음모론을 양산했다. 이를 신봉한 이들은 트럼프가 직접 부정선거 주장을 꺼내자 폭도가 되어 의사당을 침탈했다. 양극화한 정치가 음모론을 만나 빚어진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영국보다 훨씬 위험한 것이었다. 그리고 2년 뒤 브라질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③50.9% 대 49.1%. 2022년 브라질 대선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룰라 후보에게 이런 간발의 차로 패하자 그의 지지자들은 군부대로 몰려갔다. 선거가 조작됐다며 쿠데타 촉구 시위를 벌이더니, 군이 움직이지 않자 직접 대통령궁을 점거해 “소스코드를 내놓으라”고 외쳤다. 브라질의 전자투표 시스템을 누군가 뒤에서 조종한다고 이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이 폭동을 부른 선거 음모론의 시작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들어낸 이는 보우소나루였다. 당시 하원의원이던 그는 자기 진영의 대선 후보가 근소하게 패하자 선거조작 주장을 꺼냈다. 기자회견, 인터뷰, SNS에서 끊임없이 “선거가 조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증거는 없었다. “전자투표라서 개표를 볼 수 없으니 조작됐을 것”이란 추측에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해커에게 물어보니…” 하면서 떠도는 얘기로 줄기차게 살을 붙였다. 심지어 2018년 대선에서 자신이 이겼을 때도 “선거가 조작됐다”고 했다. 조작되지 않았다면 결선투표까지 안 갔을 거라면서.

보우소나루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의 음모론을 확대재생산하는 나팔수가 불어났다. 정권을 잡자 권력에 기생하는 음모론 집단이 형성됐고, 양극화 지형에서 치러진 이번 대선에 이르러 한쪽 진영의 집단 망상으로 굳어졌다. 브라질은 종이투표 시절의 숱한 부정을 차단하기 위해 1996년 전자투표를 도입했다. 20년간 아무 탈 없이 작동해온 민주주의 시스템이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난데없는 음모론에 국민 절반의 신뢰를 잃기까지 딱 8년이 걸렸다.

④48.5% 대 47.8%. 한국의 지난 대선은 0.7% 포인트의 초박빙 승부였다. 혐오를 주입한 네거티브 선거판에서 ①~③ 못지않은 정치 양극화에 빠졌음을 우리는 고통스럽게 확인했다. 선거가 끝난 지 1년이 돼 가지만 골이 메워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보우소나루의 나팔수처럼 양 진영의 음모론 유포자들이 유튜브에서, SNS에서 요새를 구축해가고 있다. 트럼프가 그랬듯이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제도권 정치인의 행태마저 낯설지 않게 됐다. 미국은 트럼프 정권 4년 만에 음모론 세력에 의사당을 침탈당했고, 브라질은 8년 만에 그렇게 됐다. 미국 의회는 큐어넌 우호세력의 몽니에 하원의장을 뽑지 못하는 수모도 겪었다. 한국의 양극화 정치는 이런 꼴에서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지 모른다. 음모론이 활개 치는 양극화 갈등 지형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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