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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속 아찔한 다리 지나 한 폭의 수묵화 속으로

하얀 눈 및 상고대와 기암괴석 속 빨간색 삼선계단 등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설국 풍경을 펼쳐놓고 있다. 삼선계단에 등산객이 오르고, 왼쪽 위 대둔산 정상 마천대에 개척탑이 우뚝하다.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대둔산 삼선계단.


물줄기가 얼어 거대한 빙벽을 연출한 병풍바위.


얼음장벽을 치맛자락처럼 펼쳐놓은 위봉폭포 하단.


겨울철 산봉우리를 하얗게 뒤덮은 눈과 상고대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험준한 바위산은 한 폭의 수묵화를 펼쳐놓는다. 거대한 빙벽은 새로운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환상적인 ‘겨울왕국’을 만나러 전북 완주로 떠나보자.

완주에서 대표적인 산은 대둔산(878m)이다. 충남 금산·논산과 경계를 이루며 ‘호남의 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한다. 3개 시군에 속하는 구역별로 풍광이 뚜렷하게 차별화되고 즐기는 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완주 쪽 대둔산은 험준한 바위산이다.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은 V자로 깊이 파였다. 아찔한 절벽과 험한 암벽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다. 한국의 대표 명산들에 비하면 높지 않은데도 워낙 가팔라 완주 쪽은 전체가 등산객들에게 ‘깔딱 고개’라 불린다.

힘든 코스임에도 짧은 시간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케이블카와 출렁다리,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 등이 도와준다. 케이블카가 단숨에 고도를 높여준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가면 임금 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한 길이 48m, 폭 1.2m의 구름다리, 즉 출렁다리를 만난다.

이 다리는 1975년 건설된 국내 최초의 출렁다리였다. 건축 공사 때 비계발판으로 쓰곤 했던, 구멍 뻥뻥 뚫린 철판을 바닥재로 사용했다. 출렁거림이 심하고 구멍으로 보이는 낭떠러지가 아찔해 담이 약한 이들은 건널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2021년 다시 놓인 현재의 다리는 출렁임이 별로 없는 안정된 다리다. 눈을 뒤집어쓴 나무와 고고한 듯 서 있는 바위, 붉은색 다리가 섞여 장관을 연출한다. 다리에서 조망하는 금강계곡도 일품이다.

이어 삼선계단이다. 늘어선 3개의 바위 봉우리가 마치 신선 같다 하여 삼선바위라 불리며, 바위 꼭대기로 이어진 철계단을 삼선계단이라 부른다. 고려의 마지막 재상이 나라가 망함을 한탄해 이곳에 묻혀 살았는데, 그의 딸들이 선인으로 변해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실제 경사는 51도이지만 체감 각도 70도로 일컬어지는 삼선계단은 계단 수 127개, 폭 50㎝도 채 되지 않는다. 오금이 저릴 정도다. 내려올 수 없는 일방통행이다. 일단 들어서면 끝까지 올라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는 게 더 힘들다. 몸을 돌리면 벼랑과 계곡이 시야에 들어와 어지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우회로가 있다.

이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정상 마천대에 선다. ‘하늘에 닿을 듯 높다’는 뜻이다. 우뚝 솟은 개척탑이 햇빛에 반짝인다.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산하는 장쾌하다.

대둔산도 하얀 상고대가 일품이다. 굽이치는 산줄기와 수려한 바위 봉우리와 깊은 계곡이 설국을 빚어놓는다. 바로 아래 죽순처럼 뽀족한 바위들은 솜 같은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거대한 바위틈을 뚫고 자란 소나무들은 분재를 확대해놓은 듯 단아하다.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낙조대와 낙조산장이 시야에 잡힌다. 낙조대는 일몰은 물론 일출 감상지로도 인기다.

겨울 풍경은 인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둔산 자락 운주계곡에 위치한 병풍바위다. 여름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한겨울 추위에 그대로 얼어붙어 신비롭고 아름다운 빙벽으로 변신했다. 빙벽 등반가들과 수강생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혹한을 이기고 있다.

얼음이 장관을 이루는 폭포도 있다. 조선시대부터 완산 8경으로 명성이 높았던 위봉폭포다. 여름철 울창한 주변 나무에 가려졌던 폭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암괴석 속 높이 60m의 2단 폭포는 긴 얼음줄기를 늘어뜨렸다. 나무데크를 따라 폭포 바로 앞에 다가서면 거대한 얼음장벽이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다. ‘물멍’ 대신 ‘빙(氷)멍’하기에 좋다. 우리나라 판소리 8대 명창으로서 정조와 순조 때 활약한 권삼득 선생이 득음의 경지에 오른 곳이다.

위봉폭포 바로 위에 위봉산성이 있다. 전쟁 시 방어 목적이 아니라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어진을 모셔오기 위해 세운 곳이다. 둘레가 16㎞로 서·동·북 3개의 성문 가운데 서문만 남아 있다. 서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는 붕괴돼 사라지고 지금은 아치형 석문만 남아 있다. 석문 위에서 성 밖을 바라보고 찍으면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여행메모
케이블카 오전 9시부터 20분 간격 운행
BTS 화보집 촬영지 소양면 사진 여행

대둔산은 통영대전고속도로 추부나들목에서 가깝다. 출발점은 대둔산 집단시설지구다. 주차장은 현재 무료이고, 입장료도 없다. 케이블카 매표소 가는 길에 산채비빔밥과 파전, 인삼튀김 등을 내놓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여관·민박·펜션도 많다.

케이블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이동하는 데 6분 소요된다. 눈이 많이 오거나 한파가 심해도 정상 운행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면 중단된다. 요금은 어른 왕복 기준 1만4000원이다. 눈 쌓인 산에서는 아이젠이 필수다.

위봉폭포 등이 있는 소양면 일대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화보집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진 여행의 명소가 됐다. ‘아원고택’ ‘소양고택’ 등 오성한옥마을과 저수지 오성제도 빼놓을 수 없다. 아원고택은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을 해체한 뒤 이축했고, 소양고택은 전북 고창과 무안에서 130년 된 고택 석 채를 옮겨 왔다. 2곳 모두 한옥스테이는 물론 갤러리, 북카페 등 문화공간으로도 운영된다. 산자락과 뭉게구름을 투영하던 오성제는 겨울철 얼음 위 하얀 설원으로 변해 있다.



완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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