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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톨스토이에게서 배운다



젊은 시절 나는 시인 지망생이었기에 소설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국내 소설은 어느 정도 읽었지만 외국 소설은 거의 읽지 못했다. 더구나 장편 소설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찍이 톨스토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소설보다도 그의 사상이나 인생관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가장 곤란하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생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괴로울 때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생은 모든 것이다. 생은 신(神)이다. 생을 사랑함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지은 책 ‘황토길’에서 읽은 내용이다. 이 문장은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 ‘전쟁과 평화’ 안에 나오는 문장이라는데 한하운 시인이 자필로 영어 원문을 베끼고 우리 말로 번역해 놓았던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 시절 읽었는데 그 여운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세계적 문호이고, 한 시절 ‘러시아에는 황제인 차르와 톨스토이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군중적 지지를 얻었던 인물이다. 귀족 집안에서 출생해 30세 이전까지는 어지럽고 방탕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34세에 16세 연하인 아내 소피아와 결혼, 13명의 아이를 낳으며 살면서 평생 수없이 많은 명작을 집필했다.

그런 톨스토이의 삶 가운데서 나에게 가장 큰 시사(示唆)를 준 것은 50세 무렵의 회심(回心)이다. 자기 인생에 대해 강한 회의와 좌절을 느낀 뒤 지금까지의 삶을 철저히 반성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열어간 점은 감동적이다. 누구든 한 생애를 살면서 회심의 기회를 얻는다는 건 축복이요 행운이라 할 것이다.

공자님도 나이 50살이면 지천명(知天命)이라 했고, 인도인들의 인생 4단에서도 보면 50살이면 학습기·거주기를 거쳐 산림기, 그러니까 자신의 본질을 찾아서 숲속으로 들어가 수행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다. 톨스토이는 그렇게 회심의 시간을 갖고 ‘참회록’이란 책을 쓰고 그 이후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한다.

그의 생애 82년이다. 그런데 오늘날 명작이라 불리는 그의 작품들은 회심의 기회 뒤에 쓰여진 것이라 한다. 실상 인생의 핵심은 청소년이나 청년기인 전반에 있지 않고 장년기나 노년기인 후반에 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씀을 했다. 속된 말로 끗발이 좋아야 진정 좋은 것이다.

젊은 시절의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고 젊은 시절의 명예도 진정한 명예가 아니다. 그것은 매우 가볍고 위험한 성공이요 명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젊은 시절의 성공과 명예에 매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은 느슨하게 기다리며 참으면서 뒷날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당장 잘 풀리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거나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도 학교로 문학강연을 나가면 학생들과 톨스토이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세 가지에 대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 첫째는 어린아이. 둘째는 장미꽃. 셋째는 어머니 마음. 이 가운데 끝까지 아름다운 것은 무엇일까? 물으면 아이들은 곧잘 정답을 댄다. 어머니 마음. 왜인가? 시간이 지나면 어린이는 늙고 장미꽃은 시들지만, 어머니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니까. 참으로 거룩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세 가지는 또 어떤가? 첫째가 지금, 여기. 둘째가 옆에 있는 사람. 셋째가 그 사람에게 잘하는 것. 이 얼마나 단순 명쾌하지만 놀랍도록 소중한 지혜인가! 그런데 이걸 우리가 일찍이 알지 못하고 실행하지 못해서 스스로 불행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흔한 말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때란 말이 있다. 지금부터라도 그래 보아야 할 일이다.

나태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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