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신생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위기설이 나온 지 이틀 만에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1982년 설립된 SVB는 기술 스타트업 분야에 자금을 지원하는 전문 은행으로 총자산 2090억 달러(약 276조원) 규모의 미국 내 16위 은행이다. 이번 사태는 은행 주 고객인 신생 기업들이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자금이 부족해지자 예금을 지속적으로 인출해간 게 발단이 됐다. 손실 보전을 위한 은행의 증자 계획마저 무산되며 주가가 폭락하자 금융 당국은 바로 폐쇄를 결정했다. 문제는 SVB 파산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더 나아가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다.
SVB는 40여년간 미국 신생 기업의 돈줄로 기술·건강 관리 벤처기업의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파산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약 3억3000만원) 이상의 예치금은 묶이게 돼 기업의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재무 구조가 열악한 스타트업이 당장 급여를 지급하지 못해 직원을 해고하거나 자금난으로 줄줄이 도산할 우려도 나온다. 현지에선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상황은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파산으로 인한 기업 충격이 예상보다 클 것이라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 금융권과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SVB 영국 지점이 파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영국 재무부는 스타트업들과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 은행은 캐나다를 포함해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 이스라엘 스웨덴 등에서도 영업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은 12일 국내 은행은 SVB와 사업 모델이 다르고 자본 건전성도 강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 해외 불확실성이 국내 경제 불안으로 쉽게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이 불안하면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고,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게 된다. 이 경우 주가 하락이나 환율 상승 등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대외 취약성 때문에 미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 경제는 앓아눕는 양상이 반복돼 왔다. 당국은 이런 가능성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우선 국내 기업의 SVB 예치금과 손실 여부를 신속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안 요인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물론 한국은행과 기업들도 이번 사태를 주시하며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