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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장순흥 (11) 미국서 배운 원전 기술, 석박사 과정 수업에 녹여내
장순흥(앞줄 왼쪽 다섯 번째) 한동대 총장이 1983년 서울 근교에서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학과 창설 교수인 전문헌(앞줄 왼쪽 여섯 번째) 교수, 석사과정 학생들과 야유회를 갖고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초대원장이었던 이상훈 박사님은 국내 원자력 안전 규제의 기틀을 놓은 분이다. 한국은 원자력 발전소 영광 3, 4호기(현 한빛 3, 4호기) 건설을 계기로 원전 설계, 제작, 건설 기술에서 자립했다. 안전 규제 수준도 국제적 수준이 됐다. 이때 원자력 안전 규제 기준을 만들다시피 한 분이 이 박사님이었다.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있을 ...
입력:2021-11-18 14:05:02
[역경의 열매] 장순흥 (10) 스물여덟에 카이스트 부임… 원자력 기술 자립에 몰두
장순흥(앞줄 가운데) 한동대 총장이 1982년 서울 공릉동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원자력공학과 석사과정 학생들과 함께했다. 조원진 박사, 최종호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 백원필 차기 한국원자력학회장, 김명기 원자력기술사, 나기용 두산중공업 원자력BG장(뒷줄 왼쪽부터). 카이스트는 1982년 3월 원자력공학과(현재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을 처음으로 뽑았다. 나는 그해 7월 귀국해 28세에 교수로 강단에 섰는데, 연구원 과정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학생이 꽤 있었다. 당시 교수는 먼저 부임하신 전문헌 교수님과 단둘이었다. 학과의 목표를 원전 기술 자립에 두고 ...
입력:2021-11-17 14:10:01
[역경의 열매] 장순흥 (9) 한국서 원자력공학과 설립 소식에 사표 내고 귀국
장순흥(가운데) 한동대 총장이 1981년 5월 졸업가운을 입고 미국 보스턴 MIT 교정에서 아내 김경미(오른쪽)씨, 장평훈 박사와 함께했다. 1977년부터 81년까지 보스턴 유학 시절 믿음의 동역자를 많이 만났다. 특히 MIT에는 믿음 좋은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처음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만난 분 중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분들이 있다. 박사 후 과정에 있던 김인수 교수와 그의 부인 김수지 교수다. 이분들은 신실한 크리스천 리더로서 성경공부에 열심을 다했다. 김 교수 부부와의 인연은 한국에 와서도 카이스트에서 계속됐다. 같이 공부하던 조준호 선배는 공부...
입력:2021-11-16 14:10:03
[역경의 열매] 장순흥 (8) 선배 전도하다 선배 여동생에게 마음 “저와 평생을…”
장순흥(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1979년 11월 미국 보스톤한인교회에서 김경미(오른쪽 두 번째)씨와 결혼예배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왼쪽은 당시 MIT 경영대학원에 다니던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아내 김영명씨. 1978년 1월 MIT가 있는 미국 보스턴에는 눈이 많이 왔다. 식료품점을 찾아갔지만 음식이 모두 팔렸다. 총각 유학생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식사를 해결했다. 나는 끼니도 해결하고 전도도 할 겸 MIT 선배 집에 갔다. 저녁 시간이었는데 선배가 반갑게 맞이했다. 식사 후 곧바로 전도에 들어갔다. 선배의 여동생은 사과를 깎으...
입력:2021-11-15 14:05:03
[역경의 열매] 장순흥 (7) 시험 예상문제 모두 적중… “완벽한 모범답안” 교수 칭찬
장순흥(왼쪽) 한동대 총장이 1978년 나상천 박사와 미국 매사추세츠주 MIT 메인홀 앞에서 찰스강을 바라보고 있다. 유학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복음을 전했던 일이다. “혹시 제가 성경에 대해 5분간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시다시피 미국 문화가 기독교 문화이고 성경의 문화잖아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책인 성경은요….” 아무리 불신자라 하더라도 성경 이야기를 짧게 해주겠다고 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때는 복음 전하는 일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복음을 전하는 순...
입력:2021-11-14 14:10:02
[역경의 열매] 장순흥 (6) “한국 원자력 발전에 이바지하겠다”… 미국 유학길
장순흥(뒷줄 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1977년 미국 MIT 대학원 재학 시절 보스톤한인교회에서 청년들과 함께했다. 당시 장 총장은 청년 회장으로 활동하며 복음전도에 힘썼다.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늘 떠올랐던 생각이 있다. ‘한국은 원자력과 관련된 물리학 및 기초이론 과목은 잘 가르쳤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 설계를 위한 공학 및 설계 관련된 경험자가 거의 전무하다.’ 당시만 해도 한국은 미국 도움을 받아 원자력 발전소 시공만 하는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1971년부터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개발한 가압 경수로형 원자력 발전...
입력:2021-11-11 14:05:05
[역경의 열매] 장순흥 (5) ‘복음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학업과 복음 전도에 최선
장순흥(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1977년 예수전도단에서 전도활동을 함께한 이상업 목사와 함께 야외로 향하고 있다. 당시 서울대 공과대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었다. 지금의 서울과학기술대 자리다. 1972년 대학 입학 후에도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짓기 시작했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지만 창조주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주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을 믿는 자마다 영생과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그분을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
입력:2021-11-10 14:05:03
[역경의 열매] 장순흥 (4) “신앙이 공부보다 우선”… 고3 시험기간에도 예배
장순흥(왼쪽 네 번째) 한동대 총장이 1971년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 교정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했다. 1970년대만 해도 교회 주보는 ‘가리방’이라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요즘이야 컴퓨터로 작업해 손쉽게 출력하지만, 그때는 등사판을 롤러로 밀어서 한 장 한 장 만들었다. 철필로 등사지 위에 글씨를 쓰고 고무 롤러에 잉크를 묻혀 등사지를 누르면 등사지 아래 있는 종이에 글씨가 새겨졌다. 매주 토요일 아이들에게 수학 문제 풀이방법을 가르쳐주고 같이 주보를 만들었다. 서울 경복고 안에서도 왕성하게 전도 활동을 펼쳤다. 대표적인 전도...
입력:2021-11-09 14:05:04
[역경의 열매] 장순흥 (3) 고등부 회장 맡아 무료 수업해가며 전도에 매진
장순흥 한동대 총장이 고등부 학생회장을 맡던 시절 서울 덕수교회. 당시 교회는 서울 중구 조선일보 자리에 있었다. 1970년 3월 주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받은 순간부터 우울감은 사라졌다. 늘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졌다. 내면의 풍요 속에서 감사가 이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교회를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그다음 주일은 마침 고등부 회장을 뽑는 날이었다. 당시엔 고등부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별로 없었다. “새로 나온 순흥이가 회장을 맡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고등부에도 새로운 피가 수혈돼야 합니다.” ...
입력:2021-11-08 14:05:03
[역경의 열매] 장순흥 (2)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우울증… 성경 말씀 통해 극복
장순흥(오른쪽) 한동대 총장이 1969년 서울 경복고 재학시절 학교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1969년 청와대 옆 서울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경복고에 진학했다. 열심히 공부했더니 좋은 성적이 나왔다. 공부에 자신감이 붙었다. 문제는 70년 초 겨울방학 때 발생했다. 문득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잘 살아도, 못 살아도 결국은 죽음이다.’ 갑자기 허무감이 밀려왔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슬...
입력:2021-11-07 14:05:03
[역경의 열매] 장순흥 (1)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주님 말씀 일찍 깨달아
장순흥 한동대 총장이 1955년 모친 이정송 권사와 돌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지난 40년을 뒤돌아보니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과학자 교육자 행정가로서 달려온 삶을 살았다. 1982년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술 자립에 기여했으며, 2014년부턴 하나님의 대학인 한동대 총장을 맡아 글로벌 기독 인재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나는 1954년 5월 6일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유복한 가정이었다. 이북 출신인 아버지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영어도 잘하고 학구...
입력:2021-11-04 14: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30·끝) 일상에서 주님의 삶 실천하고 동행하는 삶 살자
트루디 사모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2008년 국내의 한 공원에서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들과 함께 가족 사진을 촬영했다. 누구나 평생 마음속에 담고 있는 한 마디 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노래 가사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의 유언일 수도 있다. 신앙인에게는 자신이 평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나 신앙고백이 있다. 내 인생을 한 구절로 요약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꼽는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
입력:2021-11-03 14: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9) 갑자기 심해진 허리 통증에 입원 “암이 많이 진전…”
트루디(오른쪽) 사모가 2010년 미국 LA에서 딸 김애설(가운데) 교수, 아들 김요한 목사와 함께 사진을 촬영했다. 2006년 가을, 한 강연회에 초청돼 미국을 방문했다. 강연 준비로 긴장한 상태라 몸의 상태를 잘 몰랐다. 어느 날 미세한 허리 통증이 느껴졌다. 허리 통증은 한국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라 병원에 가지 않고 참았다. 그런데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돼 병원에 입원했다. LA에 사는 딸이 급하게 병실로 달려왔다.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암이 많이 진전된 상태입니다. 다발성 골수종 3기입니다.” ...
입력:2021-11-02 14: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8) “거칠고 성한 데 없는 ‘아름다운 원장님 손’ 닮고 싶어요”
트루디 사모가 2014년 경기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1층에 있는 ‘블루밍 파이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파이숍은 늘 분주하고 손님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하다. 커피와 쿠키를 주문하는 소리, 친구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소리 등, 방학을 제외하고 늘 열려 있는 이곳은 교인과 학생, 학부모들의 공동 쉼터이다. 하루는 어떤 분이 가게를 찾아와 내 손을 잡고서는 “사모님에게 교훈 한 가지를 배워 간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달걀 껍질에 남아 있는 흰자를 손가락으로 긁어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릇에 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
입력:2021-11-01 15:05:01
[역경의 열매] 트루디 (27) 학부모와 성도들 사이 고민 해결 사랑방 된 ‘파이숍’
트루디 사모가 2013년 경기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 1층에 있는 ‘블루밍 파이숍’에서 교사 및 장애학생들과 함께 파이를 만들고 있다. 유치원, 학교와 함께 내가 돌보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바로 아이들에게 빵과 쿠키를 제공하는 ‘파이숍’이다. “교인들을 위한 쉼터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파이숍을 열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에게 말했더니 옆 눈으로 나를 봤다. “갑자기 무슨 파이숍? 당신 빵 만들 줄 알아?” “아뇨. 직접 만들어야죠. 배워서.” 남편은 의아하다는 듯 내 얼굴을 물끄러미 ...
입력:2021-10-31 14: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6) 반 친구와 펼친 투명인간 작전… “나 화장실” 기적 일어나
트루디 사모가 1995년 경기도 수원 원천동에 위치한 중앙기독유치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에 다니던 장애 아동 중에 특별히 잊을 수 없는 아이가 있다. 바로 준원이다. 학부모가 아이의 수업을 참관하는 날,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준원이는 어쩐 일인지 엄마를 보고도 담임선생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자폐아 중에는 간혹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준원이는 그런 아이는 아니었다. 준원이 어머니는 “약을 먹어서 그럴 것”이라며 울먹였다. “준...
입력:2021-10-28 14: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5) 비장애·장애 아이들, 한데 어울려 더불어 사는 법 배워
트루디 사모가 1995년 수원 중앙기독유치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수원 중앙기독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장애·비장애 학생들을 통합 교육한다. 기독교 교육은 모든 아이에게 공평한 교육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치원을 개원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한 초등학교 국어 교사가 나를 찾아왔다. “중앙기독유치원이 지역 학부모들에게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꽤 났더군요. 하지만 제가 가르치는 장애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이라면 장애 아이들을 위한 ...
입력:2021-10-27 14: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4) 기독교 교육 반발한 학부모들 “기도만 하면 수업은?”
트루디 사모가 1995년 경기도 수원 원청동 중앙기독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수원 인계동에 살 당시 다른 교회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교인들이 “우리 교회에도 유치원을 세워달라”고 간청했다. 나 역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영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치원 설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뜻있는 교인들이 헌금을 모으고 1년 남짓 건물을 지어 마침내 1978년 중앙기독유치원을 개원했다. 교사를 뽑을 때 정한 원칙은 하나였다. ‘하나님께 교사 소명을 받은 사람인가.’ ...
입력:2021-10-26 14:05: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3) 교회 미화원으로 오해 “어디서 구했어, 일 잘하네”
트루디 사모가 2000년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에서 왼손에 청소 바구니를 들고 청소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아니 사모님, 세계적인 목사님 사모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하세요. 저는 높은 사모님이 이런 일 하시는 거 처음 봤어요. 어머나 세상에.” 교회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내 모습을 본 성도들의 반응이다. 어릴 때부터 집 안 청소하는 습관 때문에 딱히 의식하진 못했지만, 성도들 눈에는 특별하게 보인 모양이다. 칭찬을 듣자고 하는 일이 아닌데도 성도들이 내 앞에서 감탄하면 도리어 민망해질 때가 많다. 한번은 교회에서 한 자매...
입력:2021-10-25 14: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2) “사모님, 100만원만”… 돈 빌려 간 뒤 만나면 피하기만
1998년 트루디 사모가 50번째 생일을 맞아 수원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마련한 축하 파티에서 남편 김장환 목사와 함께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남편이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장에 당선된 뒤 유명해지자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도 남편과 나의 숙제였다. 사모인 나는 그런 부탁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한번은 병원 청소 일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 분이 나를 찾아와 “돈을 갚지 못해 딸이 섬으로 팔려 가게 생겼다”며 하소연...
입력:2021-10-24 14:05:04
[역경의 열매] 트루디 (21) 세계 침례교 총회장 된 남편 “어려운 일에 쓰임 받고 싶다”
트루디(왼쪽) 사모가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8차 세계침례교연맹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된 남편 김장환 목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2000년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전 세계 침례교 대표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8차 세계침례교연맹 총회가 열렸다. 이날 남편은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침례교 총회장으로 선출되는 영광을 누렸다. 1억 5000명이 넘는 세계 침례교인을 대표하는 한국인 목사라니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나 또한 가족들과 함께 남편의 취임을 보기 위해 동행했다. 남편은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걸 꺼려 하는 사람...
입력:2021-10-21 14: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20) 딸 걱정에 늘 염려하시던 어머니 “사위 덕분에 호강”
트루디(중앙) 사모가 20대 시절 미국 미시간주의 자택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머님이 많이 위독하세요. 아무래도 미국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1983년 2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미국으로 갔다. 그때 어머니 나이는 82세였다. 당뇨를 앓고 계신 터라 곧 천국에 가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축복해드렸다. ‘엄마, 제가 한국에서 사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 있었다는 걸 아실 거라 믿어요. 자식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우셨으니 천국에 가시면 ...
입력:2021-10-20 14: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9) 혼혈아 아픔 극복한 요셉 ‘축복의 도구’로 쓰임 받다
트루디 사모의 첫째 아들 김요셉 목사가 1997년 6월 15일 미국 시카고 지역 한인교회협의회에서 주최한 전도대회에서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남편은 요셉을 엄하게 다루면서도 큰 집회에는 꼭 데리고 다녔다. 혼혈아인 아들에게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남편은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마지막 날에도 요셉을 서울 여의도광장에 데리고 갔다. 요셉은 아버지가 수많은 군중 앞에서 통역하는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정부에서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아버지와 고급 호텔로 가면서 몹시 즐거워했다. 아버지가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
입력:2021-10-19 14:10:02
[역경의 열매] 트루디 (18) 혼혈아에 대한 편견에… 열 살 아들 “사는 게 힘들다”
트루디 사모의 첫째 아들 김요셉(왼쪽), 막내 요한 군과 둘째 딸 애설 양이 어린 시절 소파에 앉아 기도 손을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을 차별하는 일이 덜하지만, 예전에는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무척 심했다. 2남 1녀 세 명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다른 한국 아이들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가르쳤지만 아이들 나름대로는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비교적 잘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결코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첫째 요셉은 늘 외국인 엄마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다정한 어머니로 믿...
입력:2021-10-18 14:05:03
[역경의 열매] 트루디 (17) “왜 내게 돈 안 줘요” 물음에 “미국 도망갈까 봐” 농담
트루디(아랫줄 왼쪽 첫 번째) 사모가 교회 성도들과 함께 찍은 사진. 선교 초기에 남편의 수입은 미국 기독봉사회에서 보내주는 선교비에서 약간의 급여를 떼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외국에서 오는 선교비가 점차 줄어들었다. 외국에서 오는 선교비 총액은 줄지 않았지만 한국 화폐 가치가 높아져 원화로 환산할 때 금액이 줄어든 것이다. 남편은 1966년에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했지만 사례비는 80년대부터 받기 시작했다. 극동방송 사장으로도 일하고 있지만 남편은 월급을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여보 나 생활비 좀 줘요.” 나...
입력:2021-10-17 14:10:02